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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추석 아침에 생각하는 ‘세종의 고향’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3-09-29 13:41:12 조회 : 215

추석 아침에 생각하는 ‘세종의 고향’

 

박현모 소장

세종리더십연구소

얼마 전 고향엘 다녀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함평으로, 단가 <호남가>에도 나오듯이 온통 천지가 논밭뿐인 평범한 농촌 지역이다. 이십여 년 전 이석형이라는 군수가 유적지나 관광지 하나 없는 이곳에 ‘나비축제’라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 이후 이젠 제법 유명해졌다고 하나, 내가 자란 고장은 옛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오지 마을 그대로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린 시절 뛰놀던 산과 들이 개발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드물지만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지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찾아가는 고향은 내게 늘 용기를 북돋아주곤 한다.

지금 갑작스레 고향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얼마 전에 읽은 <치평요람>의 한 대목 때문이다. <치평요람>은 세종 때 편찬된 중국과 우리 역사 속 리더십 이야기 책인데, 기원전 206년 경 초패왕 항우의 고향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을 차지한 항우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은 그곳의 지리적 이점을 들면서 도읍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함양이 위치한 관중지역은 산으로 막혀 있고 황하가 가로지르고 있어 사방이 요새인데다 땅까지 비옥하니 “도읍으로 삼아 패자(覇者) 노릇을 할 수 있는 적지”라는 주장이었다.

 

‘금의환향’하려다 패착에 빠진 항우

하지만 항우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입성할 때 자행한 마구잡이식 살육으로 민심이 이미 떠나버렸고 진시황의 아방궁까지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부유하고 귀하게 된다 한들 고향에 돌아가 다니지 않는다면, 한밤중에 비단으로 수놓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게 항우의 거절 이유였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유래이기도 한 이 이야기는 지리(地利)가 곧 천시(天時) 및 인능(人能)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지혜로운 조언을 거절한 리더가 어떤 패착에 빠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함양지역은 그런데, 항우보다 약간 일찍 그곳에 입성한 유방에게는 결코 머물러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한고조 유방이 화려한 궁실과 휘장, 개와 말, 그리고 보배와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고 그곳에 머물고 싶어하자 휘하의 번쾌와 장량은 “주군께서는 겨우 부잣집 영감님이 되는데 만족하려 하십니까? 이들 사치스런 것들은 모두 진나라를 망하게 한 물건들인데, 이것을 가져다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천하를 얻으시려면 빨리 이곳을 떠나 패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라고, 탈(脫)함양을 독촉했었다. 만약 그때 유방이 번쾌의 말을 듣지 않고 함양 아방궁에 머물렀더라면 뒤이어 입성한 막강 항우 군(軍)에게 패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함양 고수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항우를 가리켜 “사람 옷 입은 원숭이”라고 경멸하던 한생은 큰 솥에 삶겨 죽는 형벌을 받았다.

항우의 고향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세종의 고향은 어디일까 생각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1397년에 서울 준수방에서 태어났으니 서울을 세종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종 자신은 자신의 고향을 ‘전라도’라고 말했다. 재위22년이 되는 1440년 5월에 세종은 전라도 진도(珍島)의 수령으로 내려가는 이순전 등을 불러놓고 “전라도는 내 고향[全羅道 係是予鄕]인데, 그 지역의 감옥 송사가 다른 지역의 두 배나 된다고 하니, 크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너희들은 힘써 노력하여 장차 그 지역을 형벌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을 기약하라[期于無刑]”고 당부했다(세종실록 22/5/13).

 

“전라도는 내 고향” _ 세종이 말하는 고향 이야기

세종이 전라도를 자기 고향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본관이 전주, 즉 ‘전주 이씨’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면 세종의 정치적 고향, 즉 정치적 기반이 된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함경도 지역, 고려 말 조부 이성계의 정치적 기반이 된 동북면 지역(함경도 함흥)이다. 말하자면 세종이 태어난 신체적 고향은 한양 준수방(서울 종로)이지만,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한 지지기반(정치적 고향)은 전라도 전주와 함경도 함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태조나 태종 또는 세종이 왕위에 오른 뒤 함흥이나 전주 지역 사람들을 특별히 발탁하여 중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함흥 지역은 태조 이래로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차원에서 중시되었고[“경흥(慶興)”이라는 지명], 전주는 태종 때 경기전(慶基殿)을 지어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등 성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인재들을 뽑아 요직에 앉히는 등의 특혜를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곧 스스로를 특정 지역의 맹주로 국한시키는 우책(愚策)일 따름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태조와 태종, 그리고 세종이 즉위한 다음 국가경영의 고향으로 삼은 것은 일반 백성들이었다(리더십 고향). 그들은 내우외환 등 국가에 어려움이 생길 때면,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을 두루 만나서 민심에 귀 기울였고, 거기서 일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국가나 기업의 리더들에게도 세 가지의 고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태어난 지역이나 부모 형제가 사는 곳은 ‘신체적 고향’이다. 그리고 성장의 기반이 되었던 곳, 즉 정치 지지층 내지 회사 사람들은 ‘정치적’ 내지 ‘조직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 앞서 유방에게 ‘부잣집 영감 되기를 넘어 천하의 패자가 되라’고 한 번쾌와 장량의 논리에 따르면 – 리더가 또 다른 고향을 발견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리더십의 고향’이라 부르고 싶다.

 

‘사람 옷 입은 원숭이’ 되지 않으려면...

그 곳은 자기와 혈연적 관계를 맺은 친밀한 지역이 아니다. 리더와 정치적 내지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낯설고 반대하는 사람들, 중립적인 다중(多衆)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기업으로 볼 때 다른 나라 혹은 타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층을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국가를 경영하고 ‘천하의 패자’를 꿈꾸는 리더라면 이들 권역의 사람들을 반드시 포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옷을 입은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비웃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여.야당 대표, 그리고 기업의 CEO들이 옹졸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백성과 고객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를 바란다. ‘리더십의 고향’에서 득력(得力)하여 성공하는 리더들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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