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 외워 시험 합격한 사람을 ‘못난 자’ 취급… “뽑지도 말라” 엄명
“지금 못난 자들까지 함께 뽑아서 어디에 쓸 것인가?”
과거시험 정원을 33명에서 50명으로 늘리자는 제안에 대해서 세종이 한 말이다. 세종은 요즘 과거시험 답안에 우수한 것이 드물고, 간혹 좋지 못한 것도 함께 뽑는 상황인데 정원만 늘려서 뭐하겠느냐며 신하들을 꾸짖었다. 이 자리에 있던 김종서는 “요즘 수험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동료들의 시험대비 요약본만 다퉈 가며 외우기 때문에 요행히 벼슬에 올랐어도 비루한 자들이 있다”고 개탄했다.
세종치세의 최고 비결은 역시 우수한 인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랄 수 있다. 도대체 그 시대 인재들은 어떻게 선발되었던 것일까? 인재 능력에서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고전을 얼마나 이해하고 외우고 있는지를 보는 ‘강경(講經)’과, 고전에 근거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보는 ‘제술(製述)’이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이었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공직자의 능력으로 꼭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 일치했으나, 문제는 선발의 공정성이었다. 비교적 객관적 채점이 가능한 글쓰기와 달리, 말하기 능력은 평가의 공정성에서 자주 문제가 되었다. 특히 수험생이 고위 관료의 자제인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었고, 이 때문에 권근이나 변계량 등 당시 석학들은 강경(말하기) 시험 폐지를 주장했다.
세종의 생각은 어땠을까? 세종은 고전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인재의 일차적인 조건으로 보았다. “경서에 익숙한 것이 귀하다(熟於經書爲貴)”는 말이 그것인데, 그는 고전(經書) 속 지혜를 터득하는 힘과 자기 판단 능력을 키우는 학습을 강조했다.
물론 글쓰기 능력도 외교문서 작성 등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일의 큰 흐름을 알고 예법에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비록 문장이 거칠더라도 문제될 것은 아니다”라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인재의 또 다른 조건은 실천능력이었다. 세종에 따르면 고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글귀를 이모저모로 해석하는 능력(句讀經書)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공부란 마음에 새기는 공부, 즉 심상공부(心上功夫)인데, 배운 지식을 꼭 실천하리라는 각오가 매우 중요하다. 이 각오를 바탕으로 먼저 자기 자신에게 실천해보고 나아가 일터에 나가서 적용하는 공부여야 한다는 게 그의 학습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시험을 통과했다고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배운 것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통해서 더욱 배움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곳이 일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 사람들은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배우고(學) 묻는(問) 데 뜻을 두지 않는다”는 세종의 말이 그것이다. 일터에 나가서도 배우고 묻는 학습의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자가 바로 세종이 말하는 ‘못난 자들’(不材者)이다.
세종의 인재론에 비추어볼 때 지금은 어떤가? 대다수가 시험대비용 수험서만 달달 외워서 겨우 합격하고, 합격한 뒤에는 고전은 물론이고 업무에 대한 전문서적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뭔가 학습해서 실천해보려는 인재들은 ‘공연히 일 만든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금방 다른 곳으로 발령 난다.
매번 정원을 채우다 보니 ‘못난 자들까지 함께 뽑아서’ 자리에 배치하게 되고, 그 못난 자들은 기업이나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나 전문 식견 없이 아마추어 행정으로 인재들을 괴롭힌다. 오죽했으면 ‘교육부 공무원 전원을 안식년 휴가를 줘, 학교 교육에서 손 떼게 해야만 자생적인 교육 씨앗이 싹틀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대한민국 공무원 선발과 교육 체제의 전면적 혁신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31401032630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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