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지효포럼] 박성원 박사_미래학자가 만난 세종 |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8-01-12 19:46:00 조회 : 555 |
미래학자가 만난 세종
장래를 예측하고 징조를 살핀 리더
박성원 박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구에서 탄생한 미래학(futures studies)을 동아시아의 철학적 관점, 특히 장자(莊子)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Park(2013)은 동아시아에서는 세 가지 시각(thinking modes)으로 변화를 설명해왔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장기적 관점(Seeing at a far distance)이다. 장자는 ‘여름 매미’를 예로 들면서 한 여름만 살다가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커다란 변화는 몇 개월, 몇 년을 내다본다고 그 방향을 짐작하기 힘들다.
미래학에서는 다른 학문과 달리 중장기적 관점에서 변화를 설명한다. 20년, 30년 후의 미래를 얘기하면 종종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그때까지 살지도 못 할 텐데 그 미래를 알아서 뭐하느냐고 반문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엘리스 볼딩(Elise Boulding)은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현재’는 시간으로 치면 200년이라고 주장한다. 볼딩은 자신이 만났던 전 세대의 탄생 연도와 자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가장 어린 세대가 사라질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를 모두 고려해야 자신이 영향을 미칠 현재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자신이 어렸을 때 자신을 안아주었던 할머니는 1900년에 태어났고, 자신이 지금 안아주고 있는 막 태어난 손자는 2100년까지는 살 것으로 간주해보자. 그럼 2100년에서 1900년을 뺀 200년이 저자의 현재다. 그가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칠 시간이 모두 현재라는 얘기다. 이렇게 현재를 계산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변화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이해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어떤 변화가 우리사회에 필요한지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다양한 관점으로 변화를 해석(Seeing with more eyes)하는 것이다. 장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원숭이에게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의 먹이(도토리)를 줬더니 화를 내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자 기뻐했다는 고사)를 예로 들면서 성인은 당대의 옳고 그름에 구애받지 않고 조화를 모색한다고 설명한다. 고사에 나오는 원숭이 조련사는 요즘 말로 개방성(openness) 또는 유연성(flexibility)을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시대에 따라 사회구성원이 지향하는 가치는 달라지며, 다양한 변인의 작용으로 우리가 알고 있다, 또는 이해했다고 믿는 세계는 붕괴되고 있음을 깨달으려면 고정된 가치관, 지배적인 견해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자는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고 확정하려는 태도 때문에 진정한 도(道)를 보는 데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셋째, 변화의 원인, 깊이를 파악하는 것(Seeing for great awakening)이다. 장자는 호접몽(胡蝶夢, 나비의 꿈)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신, 즉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린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 고사는 ‘삶은 한 밤의 꿈처럼 허망하다’거나 ‘인간중심주의 탈피’ 등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미래학자의 시각에서는 변화의 본질, 특성 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현상이 애벌레의 모습이라고 해보자. 수많은 다리를 움직여 나뭇가지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애벌레가 장차 나비가 되어 공중을 훨훨 날아다닐 것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애벌레의 미래를 이렇듯 변형적으로 예측하려면 어떤 시각으로 변화를 분석해야 할까.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된다는 고사는 변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내가 스스로 변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변화를 이해하고 방향을 예측하려면 내가 그 변화에 뛰어들어 나도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지라도 그걸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변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변화를 통해 나와 사회가 적절한 기회를 포착해 활용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3가지 시각을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정의하고, 세종에게서 어떤 미래지향적 시각이 발견되는지 살펴보았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에서 ‘장래(將來)’라는 단어를 가장 빈번하게 쓴 실록은 세종실록(184건)이라는 점이다. 사실 미래(未來)라는 단어는 근대 이후 빈번하게 쓰인 단어다. 미래를 불확실한 시공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과학기술이 사회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부터다. 농경사회에서 변화는 사계절의 순환처럼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미래는 기다리면 오는, 그래서 장래(장차 다가올 미래)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 사람들의 미래시각을 알아보려면 미래보다는 장래라는 단어를 검색해야 한다. 장래라는 단어가 쓰인 세종실록을 보면 ‘장래가 염려되어’ ‘국가의 장래’ ‘장래의 징조’ ‘장래를 헤아려야’ ‘장래를 돌보아야’ ‘장래의 결실’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사실 다른 왕들의 실록에서도 ‘장래’라는 표현은 등장한다. 그러나 세종이 사용한 장래는 문맥상 명확한 차이가 발견된다. 예컨대, 다른 왕들이 가뭄이 들어, 또는 장마로 장래를 걱정하는데서 그쳤다면 세종은 장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비하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대표적인 예가 세종23년 명령한 측우기 개발과 확산이다. 이를 통해 강수량을 기록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날씨를 예측해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또한 세종이 장기적 관점에서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하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둘째, 세종은 다양한 변화를 포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근원적 처방으로 ‘학습사회’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한글창제를 통해 모든 백성이 글을 배워 지식을 얻고 이를 확산하도록 했다는 점에서도 발견되지만, 박연이 아악을 만들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세종은 ‘더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1월1일에 기록된 것을 보자. 당시 세종은 근정전에서 회례연을 베풀었는데, 처음으로 박연이 만든 아악을 사용했다.
(세종이) 말하기를, “중국의 경(磬)은 과연 화하고 합하지 아니하며, 지금 만든 경(磬)이 옳게 된 것 같다. 경석(磬石)을 얻는 것이 이미 하나의 다행인데,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律)을 만들어 음(音)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다만 이칙(夷則) 1매(枚)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박연이 즉시 살펴보고 아뢰기를, “가늠한 먹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 갈지[磨] 아니한 것입니다.” 하고, 물러가서 이를 갈아 먹이 다 없어지자 소리가 곧 바르게 되었다.
세종은 학자들과 신하들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면서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창조적 학습사회라는 책을 펴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2016)는 “더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생산성 향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발전은 학습의 방법을 배우는 것을 포함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선진국이란 학습사회가 잘 조성돼 누구라도 지식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장려된 곳이라고 단언한다. 잘 발달된 학습사회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춘 시민들이 있는 사회로 볼 수 있다. 세종이 꿈꾼 사회는 이같은 학습사회였으며 이를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세종은 징조(徵兆)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다른 왕들과 사뭇 달랐다. 징조라는 단어는 세종실록에서 65번 언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징조는 미래학계에서 사용하는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로 풀이할 수 있는데, 아직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약한 신호지만 장차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요인이다. 세종은 다른 왕들과 달리 징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만의 철학을 드러낸다. 일례로 세종실록 4권 세종1년 6월2일 기록된 것을 보자.
“(중략) 왕위에 임한 처음부터 놀라운 한재를 당하여, 기도 드리기를 간절하게 하였으나, 조금도 비가 내릴 징조가 없으니, 아침 저녁으로 삼가고 두려워해서 몸둘 바를 알지 못하는지라, 바르고 충성된 말을 들어서 재변이 풀리기를 원하노니, 대소 신료(臣僚)와 한량(閑良)·기로(耆老)는 각각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다 말하여, 이때에 정사의 잘못된 것과 생민의 질고를 숨김없이 다 진술하여, 내가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애휼하는 뜻에 부합하게 하라. 그 말이 비록 사리에 꼭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죄주지는 않으리라.”
징조를 탐색하는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을 예측해 대비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징조를 통해 조직이 지금까지 간과하거나 무시했던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논의하고 그 정보가 간과된 구조적 이유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른바 개인이나 조직이 변화를 해석하는 멘탈 모델(mental model)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징조 탐색의 더 중요한 이유다. 이런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행동이 앞서 예로 든 세종의 말이다.
그는 징조를 통해 자신이 간과했던 정보에 대해 신하들이 말해줄 것을 요청하면서도 그 정보가 딱히 사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알려달라는 당부까지 한다! 사실 새로운 정보는 이전의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비록 당장은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없더라도 공론으로 끌어들여 논의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세종은 징조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까닭 없이 미래를 낙관하기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려는 기회로 삼았다. 이는 세종이 끊임없이 새로움을 탐색하고, 새로운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을 경주했다고도 볼 수 있다. 변화를 통해 배우고, 직접 변화되어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세종은 앞서 언급한 세 번째 미래지향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결론: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태도는 개인에게는 미래의 자아효능감(미래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승시키는데 도움이 되고(Park, 2018), 조직에게는 혁신적 성과를 창출하는데 도움(Rohrbeck & Kum)이 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세종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론 학문, 문화, 예술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끊임없이 장래와 징조를 살피고 대비하려는 세종의 미래지향적 태도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Park, S. (2013). Exploring the Possibility of East Asian Futures Studies. Journal of Futures Studies, 18(2), 11-30. Park, S. (2018). A Possible Metric for Assessing Self-Efficacy toward Postulated Futures. Foresight 20(1), in press. Rohrbeck, R., Kum, M. E. (2018). Corporate foresight and its impact on firm performance: A longitudinal analysis. Tech. Fore. Soc. Change. In press. 스티글리츠, 조지프., 그린왈드, 브루스. (2016). 창조적 학습사회.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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