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지효포럼] 함진호 박사_연구자들이 만난 세종 |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8-01-12 19:28:25 조회 : 659 |
연구자들이 만난 세종
국가과학기술경영에서의 집단지성의 발현
함진호 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세종시대에 국가의 씽크탱크로서 집현전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구성하는 양대 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의 25개 출연연구기관과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의 26개 출연연구기관이며, 각기 15,000여명과 5,000여명의 연구자들이 국가에서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초 정부출연연구기관은 1966년에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이다. 여기로부터 여러 출연연구기관들이 분화되어 나왔으며,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그러한 연구기관 중의 하나이다. 이들 출연연구기관에서는 70년대 컬러TV 수상기 개발에 이어 80년대에는 전전자교환기(TDX), 중수로형핵연료를 국산화 하였으며, 이후 DRAM 메모리반도체, CDMA 이동통신기술 상용화를 이끌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형 고속열차 KTX, WiBro 이동통신기술, 나로호 우주선, 자기부상열차 등 신산업, 미래원천기술 개발을 선도하여 왔다. 과학기술분야와 대비되는 또 다른 축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의 출연연구기관이다. 이들은 국가적인 아젠다를 도출하고 그 추진 및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60년 대부터의 우리나라 고속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이런 성과들도 세종시대에 달성한 과학기술분야의 성과와 비교하면 그 빛을 잃을 수 밖에 없다.
C4J0K21O19 암호문과 같은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세종이 왕위에 있던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간의 아시아 3국 및 기타 지역의 과학적 성과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중국 4건, 일본 0건, 조선 21건, 그 이외 모든 다른 나라를 합쳐 19건의 세계적인 과학기술 성과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의 과학기술사학자인 이또 준따로 등이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서 제시하는 자료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비율은 매년 6개 분야에 대해 시상하는 노벨상에서 세종시대 32년간 동안 192개의 메달 중 우리가 91개의 노벨상을 받았다는 약간 어거지가 담긴 단순 계산이 가능하다. 세종과 집현전학자가 이렇게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박현모교수의 ‘세종이라면’ 책자에서 인용한 전상운교수의 논문에서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세종과 그 측근 학자들이 과학성과 실용성을 존중한 풍토 - 기술 자립을 위한 거시적인 노력 - 인재를 뽑아 기르고 두뇌 집단을 움직인 세종의 격려 - 집현전 학사 등 각 분야 인재들의 조직적인 공동연구 - 국책 과제로서 과학기술의 정책적 전개 - 국가적 차원의 기술 혁신 지원
‘세종이라면’에서는 박성래교수가 분석한 성공요인에 대한 견해를 아울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분석이다.
- 국책 과제로서의 과학기술 정책 - 최고 통치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집념 - 과감한 투자, 포상 등 인재등용 - 자유로운 연구분위기 - 과학기술의 ‘민족화’ - 기초 조사와 외국기술 도입
세종시대의 성과는 세종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집현전 학자들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국가정책과 사회기풍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세종시대를 통틀어 집현전에서 일한 학자의 수는 100여명에 달하며, 어느 시점을 보면 최대 30여명이 함께 근무하였다. 집현전 학자 수와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개수 51개를 비교하면 우리 출연연구기관이 갖는 엄청난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의 답답함을 아울러 느끼게 한다. 세종이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그래서 국가과학기술경영의 총괄책임자로서 이끈다면 어떻게 하실까? 그것이 우리가 본 세션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세종이 집현전을 포함한 전문가집단의 역량을 집대성 할 수 있었던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경연이라는 세미나 방식의 어전회의라고 할 수 있다. 경연을 통해서 문제의 본질 및 이의 해결을 위해 채택 가능한 다양한 해법에 대하여 살펴보고, 합의된 해법에 대하여도 적용에 앞서 현장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집하여 다각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문제발생의 소지를 최소화하였다. 세종이 지금 살아계시다면 당연히 21세기에 가용한 다양한 방법론을 아울러 적용해 문제를 풀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와 관련하여 3명의 연사를 모셔서 세종이 사용할만한 21세기의 방법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연사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미래학을 연구하고 있는 박성원박사로 세종실록에서 월등히 많이 나타난 장래(將來)와 징조(徵兆)라는 단어를 살펴보면서 세종이 얼마나 세밀한 변화에 집중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고자 힘을 쏟았는지에 대하여 소개한다.
두 번째로 발표할 안창원박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에 근무하면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소셜시뮬레이션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안박사는 세종의 집대성과 실험이라는 연구 및 검증 철학을 21세기의 방법론인 빅데이터와 소셜시뮤레이션 관점에서 접근하여 제시한다.
세종은 오랜 숙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이라도 현장에서의 의견을 듣는데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 공법(貢法) 제정을 위해서 무려 17년간 이어진 의견 수렴 과정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공론화의 대가였다. 마지막 발표는 권선필교수로 21세기에 실현가능한 공론화 방식에 대하여 소개한다.
- - - - - - - - - - - 세분의 발표에 앞서, 세종께서 살아계셔 국가과학기술경영을 지휘한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나름대로 상상해 보고자 한다. 세종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미래에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 지에 대하여 명확한 비전을 우선 만들어 내고자 할 것이다. 비전은 모든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2만여명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과 직접 토론하는 것도 매우 즐겨 하실 것 같다. 그리고, 서로 이질적인 분야의 연구자들간에 갑론을박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척 재미있어 하실 것 같다. 2만명이 동시에 토론하는 것이 가능할까? 최근의 집단지성을 지원하는 실현기술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가집단으로부터 도출된 해결 방안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빅데이터와 소셜시뮬레이션을 사용하실 것 같다. 그래서 옳다는 확신을 얻으면 온오프라인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이를 잘 설명해 공감대를 이끌어 낸 후 힘있게 추진해 나갈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과정을 순차적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그리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책설계, 이를 위한 연구개발, 집행의 완성도를 높여갈 것이다. 국민들 역시 미래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희망과 확신의 싹을 키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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